"철학과 수학, 그리고 상상의 합의가 만든 인간 사회"
의심은 단순히 진리를 감상하는 데에만 한정되어야 한다.
는 제목으로 내카페에 썻던글을 옮겨 왓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 인간과 사회의 본질
철학과 수학은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인도에서 ‘0’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논리나 철학도 숫자로 바꿔 계산 가능한 진리를 찾아내기 시작했죠.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사물의 위치를 수치화하여 X, Y 좌표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이로 인해 복잡한 개념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숫자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은 ‘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라는 단어는 본래 '계산하다(Compute)'에서 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바나나와 만원의 비유: 누가 더 현명한가?
눈앞에 원숭이가 바나나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바나나를 가져가고 대신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준다면, 원숭이는 고마워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화를 내겠죠. 종이 한 장의 ‘가치’를 원숭이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트에서는 그 종이 한 장으로 바나나를 10개 이상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바보일까요? 만 원의 가치를 ‘상상하고 믿는’ 인간이 현명한 걸까요, 아니면 단순한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원숭이가 더 현실적인 걸까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유머가 아닙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이 능력 덕분에 우리는 거대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것들
돈, 정의, 행복, 사랑, 주식회사, 대한민국… 이 모든 개념은 실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 개념들을 ‘집단적으로 믿음’으로써 사회를 유지해왔습니다. 이런 상상 속의 질서가 없다면, 인간은 혈연 기반의 100명 이하 소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합의’ 위에 세워진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합의는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는 말은 불과 300년 전에는 사형감이었습니다.
합의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합의는 상상이지만, 그 합의를 바꾸기 위해 수많은 피가 흘러왔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역시 그런 노력 중 하나였죠. 믿음을 강요한 독재자들은 결국 인간다움을 포기한 자들이었습니다.
좋은 사회란 신뢰와 합의, 그리고 인간다운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지만, 인문학은 그 사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둘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 그리고 건강
애정은 생리적으로 좋고, 미움은 나쁩니다. 남을 원망하는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입맛조차 사라집니다. 좋은 공기, 따뜻한 온도, 맑은 마음… 이것들은 모두 사랑의 표현이죠.
결국, 인간답게 사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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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가지고 상상을 믿는 자만이 진리를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