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없고 담당자만 있는 사회, 일본어 「たらい回し」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접했던 표현 중 하나가 있다.
바로 **「たらい回し(타라이마와시)」**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떠넘기기, 책임 전가, 핑퐁 행정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단순히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1. 담당자는 많은데 책임자는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문제가 생겨 관공서나 회사에 문의를 했다.
처음 만난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문제는 저희 담당이 아닙니다. 다른 부서에 문의해 보세요."
다른 부서에 찾아가면 이번에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처음 문의하셨던 부서로 가셔야 합니다."
다시 처음 부서로 돌아가면 담당자가 바뀌어 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사람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것이 바로 일본어로 말하는 「たらい回し」다.
2.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물론 모든 조직이나 일본 사회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책임을 지는 것보다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안전한 조직문화다.
둘째, 업무의 경계와 규정은 명확하지만 경계 밖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부족하다.
셋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결국 업무 분장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변해 버린다.
3. 한국에도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관공서, 기업, 고객센터, 심지어 작은 사업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건 본사에 문의하세요."
"저희는 가맹점이라 권한이 없습니다."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부서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 담당 업무와 권한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주거나 담당자에게 연결해 주는 것과, 단순히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다.
4. 진짜 책임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는 책임감 있는 조직이란 모든 직원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심을 갖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건 제 담당은 아니지만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두 사람의 차이는 크다.
한 사람은 업무의 경계를 지키고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조직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일본어 「たらい回し」라는 단어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일을 잘하는 조직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일을 못하는 조직은 문제를 담당자에게 돌린다.
담당자는 있는데 책임자는 없고, 규정은 있는데 해결책은 없고, 절차는 있는데 결과는 없는 사회.
그런 조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직원이 아니라, 여기저기 떠밀려 다니는 고객이나 민원인이다.
결국 조직의 수준은 규정집의 두께나 담당 부서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먼저 나서느냐로 결정된다.
책임을 나누는 것은 조직의 일이지만, 책임을 없애는 것은 조직의 병폐다.
오늘도 누군가는 담당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화를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불량중년의 생각이다.
일을 떠넘기는 재주는 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좀 늘었으면 좋겠다.

#たらい回し #타라이마와시 #책임전가 #책임회피 #핑퐁행정 #조직문화 #일본사회 #한국사회 #관료주의 #직장문화 #불량중년 #중년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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